한국사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930~40년대 무장 독립 전쟁
넵튜너스
2022. 3. 18. 23:48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1930~40년대 무장 독립 전쟁
1. 1930년대 무장 독립 전장
- 한·중 연합 작전
(1) 배경 : 만주 사변(1931), 중국 내에서 반일 감정 고조→한국과 중국의 연합 작전
(2) 내용
한국 독립군 | - 혁신 의회 계열, 한국 독립당의 군사 조직, 총사령관 지청천 - 북만주 일대, 중국 호로군과 연합 - 쌍성보·대전자령·사도하자 전투 등에서 승리→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요청으로 중국 관내 이동 |
조선 혁명군 | - 국민부 계열, 조선 혁명당의 군사 조직, 총사령 양세봉 - 남만주 일대, 중국 의용군과 연합 - 흥경성, 영릉가 전투 등에서 승리 |
※한국 독립군과 조선 혁명군의 활약※ - 한국 독립군은 서문 돌파의 주역으로 크게 활약하였고 쌍성보는 마침내 한·중 연합군에 의하여 함락되었다. - 조선 혁명군과 중국 의용군의 한·중 연합군은 영릉가의 뒷산에 대기하고 있다가 적을 요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
- 만주 항일 유격대 활동 : 동북 항일 연군의 활동, 조국 광복회 조직→보천보 전투(1937)
- 민족 혁명당 조직(1935, 난징)
(1) 조직 : 한국 독립당(조소앙), 신한 독립당(지청천), 조선 혁명당(최동오), 대한 독립당(김규식), 의열단(김원봉)의 다섯 정당·단체 규합
(2) 한계 : 김구는 참여하지 않고 한국 국민당 창당(1935)→김원봉의 독주로 조소앙, 지청천 등 이탈
(3) 변화 : 조선 민족 혁명당으로 개편→조선 민족 전선 연맹 결성(1937) - 조선 의용대(1938)
(1) 창설 : 조선 민족 전선 연맹의 군사 조직으로 한커우에서 창설→김원봉 주도
(2) 활동 : 정보 수집, 선전, 후방 교란 등의 임무(중국 국민당 부대 지원)
(3) 분화·이동 : 조선 의용대가 나뉘어 일부는 한국광복군에 편입, 일부는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 결성
충칭 | 조선 의용대 총본부(김원봉)→한국광복군에 편입(1942) |
화북 |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 결성(1941), 중국 공산군(팔로군)과 함께 할일 투쟁, 호가장 전투 승리→조선 의용군으로 개편(1942) |
※조선 의용대 설립※ 1935년 난징에서 민족 혁명당이 결성되었다. 중·일 전쟁이 발발하자 민족 혁명당은 다른 단체들과 연합하여 조선 민족 전선 연맹을 결성하였고, 이듬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조선 의용대를 조직하였다. |
2. 1940년대 무장 독립 전쟁
- 한국광복군(1940)
(1) 창설 :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정규군으로 충칭에서 창설(1940), 총사령관 지청천
(2) 흡수 :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 의용대의 일부 병력을 흡수·통합(1942), 일본군을 탈출한 학도병 합류
(3) 영국군과 연합 작전(1943) : 대적 방송, 포로 심문 등의 활동(인도·미얀마 전선)
(4) 국내 진공 작전 추진 : 미국 전략 정보처(OSS)와 협력, 특수 훈련 실시→일본군의 무조건 항복으로 실전 투입 기회 무산
※한국광복군 창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1919년에 정부가 공포한 군사 조직법에 의거하여 (중략) 중화민국 영토 내에서 한국광복군을 조직하고 (중략) 우리들은 한·중 연합 전선에서 우리 스스로의 계속 부단한 투쟁을 감행하여 극동 및 아시아 인민 중에서 자유, 평등을 쟁취할 것을 약속하는 바이다. -1940년 9월 15일 - |
- 조선 의용군(1942)
(1) 창설 : 조선 독립 동맹의 군사 조직→화북 지역의 사회주의자와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를 통합하여 창설(1942)
(2) 활동 : 중국 공산국(팔로군)과 함께 함일 투쟁 전개
1930~40년대 무장 독립 전쟁 요점 정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