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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갑오·을미개혁

넵튜너스 2022. 3. 6. 19:06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갑오·을미개혁

 

1. 갑오개혁

  • 갑오개혁의 배경
    (1) 내적 : 동학 농민군의 개혁 요구, 교정청을 설치하고 자주적 개혁 착수
    (2) 외적 : 일본의 내정 개혁 요구, 군대 주둔, 침략 기반 마련 목적
  • 제1차 갑오개혁(1894.7.)
    (1) 배경
     - 조선의 일본군 철수 요구→일본군의 경복궁 점령→흥선 대원군을 섭정으로 하는 제1차 김홍집 내각 수립 및 군국기무처 설치→개혁 추진
     - 청·일 전쟁 발발로 일본의 간섭이 약한 틈을 타서 진행, 갑신정변과 동학 농민군 개혁 주장 일부 반영
    (2) 개혁 내용
정치 '개국' 연호 사용, 왕실 사무와 정부 사무 분리(궁내부 신설), 6조를 8아문으로 개편, 과거제 폐지, 경무청 신설
경제 재정 일원화(탁지아문), 은본위 화폐 제도 실시, 조세 금납제 시행, 도량형 통일
사회 봉건적 사회 체제의 해체 : 신분제 철폐(공·사노비 제도 폐지), 인신 매매 금지, 조혼 금지, 과부 재가 허용, 고문과 연좌법 폐지
  • 제2차 갑오개혁(1894.12.)
    (1) 배경 : 일본의 청·일 전쟁에서 승세(개혁 간섭)→흥선 대원군 퇴진, 일본에서 박영효 귀국→군국기무처 폐지, 제2차 김홍집 내각 성립(김홍집과 박영효의 연립 내각 구성)
    (2) 홍범 14조 반포(1895.1.) : 고종이 종묘에 나가 독립 서고문을 바지고 선포
    (3) 개혁 내용
정치·군사 - 내각제 및 8아문을 7부로 개편, 지방 행정 구역을 8도에서 23부로 개편, 지방관의 사법권·군사권 배제, 재판소 설치
- 훈련대와 시위대 설치
경제·교육 - 육의전·상리국(보부상 단체) 폐지
- 교육 입국 조서 발표→근대적 교육 제도 마련(한성 사범 학교 관제, 소학교 관제, 외국어 학교 관제 등)

2. 을미개혁

  • 삼국 간섭과 을미사변
    (1) 청·일 전쟁 종결(시모노세키 조약, 1895.4.)→러시아 주도의 삼국 간섭(일본의 랴오둥 반도 점령 무산, 1895.4)→일본의 세력 약화
    (2) 고종과 명성 황후의 일본 견제, 박영효 실각→친러 내각 수립→을미사변 발생(1895.8.)
※을미사변※
 미우라 고로는 "20년간 지속도히어 온 조선의 화근을 제거하고자 하는데, 실로 이 한 번의 거사에 달려 있다."라고 말하고, 마침내 궁궐로 들어가 왕후를 시해하라는 뜻을 교사하였다. (중략) 자객들은 여러 방을 샅샅이 조사하여 마침내 조금 더 깊은 방안에서 왕후를 찾아내고는, 칼날로 베어 그 자리에서 시해하였다. -『대한계년사』-
  • 을미개혁(1895)
    (1) 배경 : 을미사변 직후 성립된 김홍집 내각의 개혁 추진
    (2) 개혁 내용
     - 정치·군사 : 연호 제정(건양), 친위대(중앙)·진위대(지방) 설치
     - 사회 : 단발령 실시, 태양력 사용, 종두법 시행, 우체사 설치(우편 사무 재개), 소학교 설치
    (3) 반발 :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하며, 각지에서 의병 봉기(을미의병)→아관 파천으로 개혁 중단
※단발령 시행※
 11월 15일 고종은 비로소 머리를 깍고 내외 신민에게 명하여 모두 깎도록 하였다. (중략) 궁성 주위에 대포를 설치한 후 머리를 깎지 않는 자는 죽이겠다고 선언하니 고종이 긴 한숨을 내쉬며 정병하를 돌아보고 말하기를 "경이 짐의 머리를 깎는 게 좋겠소."라고 하였다. -『매천야록』-

3. 갑오·을미개혁의 의의와 한계

의의 - 민족 내부에서의 근대화 노력
- 개화 인사들과 농민층의 개혁 의지 반영
- 조선의 개화파 관료들의 주도로 개혁 추진
- 봉건적인 전통 질서를 타파하는 근대적 개혁
한계 - 일본의 강요로 착수→일본의 침략을 용이하게 하는 제도 개혁 중심, 군제 개혁에는 소홀
- 토지 개혁 등 민중의 요구 외면

갑오·을미개혁 요점 정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