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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능력검정시험] 조선 후기의 사회 변화

넵튜너스 2022. 2. 25. 22:09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조선 후기의 사회 변화

 

1. 신분제의 동요

  • 양반층의 분화
    (1) 배경 : 붕당 정치의 변질(일당 전제화)→다수 양반의 몰락
    (2) 내용 : 권반, 잔반, 향반화
  • 중간 계층의 신분 상승 운동
서얼 노력 - 임진왜란 이후 차별 완화
- 납속책·공명첩 이용
- 집단 상소 운동(통청 운동) 전개
결과 정조 때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을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
중인 노력 철종 때 소청 운동 전개, 관직 진출 제한 철폐 요구→실패
활동 - 전문직으로서의 역할 부각
- 역관들이 외래 문화 수용에 선구적 역할 수행→북학파에 영향
- 시사(詩社)를 결성하여 문학 활동 전개
※기출자료(서얼)※
 '서'는 양첩의 자손을 '얼'은 천첩의 자손을 뜻한다. 이들은 양반 사대부의 자손이면서도 그의 모친이 양첩 또는 천첩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 양반 계층에 들지 못하고 중간 지배층인 중인에 포함되었다.
※기출자료(조선 후기의 중인)※
 아! 중인은 본시 모두 사대부였는데, 의(醫)에 들어가고 또는 역(譯)에 들어가 7·8대나 10여 대를 대대로 전하니 사람들이 중촌고족(中村古族)이라 일컫게 되었다. 문장과 덕은 비록 사대부에 비길 수 없으나, 명공·거실 외에 우리보다 나은 자는 없다. 비록 나라의 법으로 금한 바 없으나 청요직에 진출하지 못하여 수백 년 원한이 쌓여 있고, 이를 호소할 기약조차 없으니 이는 무슨 죄악이며 무슨 업보인가? -『상원과방』-
  • 상민의 신분 상승 운동
배경 농업 및 상공업의 발전에 따른 부농층 등장
방법 - 납속책·공명첩을 통한 신분 상승
- 족보·매매·위조 등의 방법으로 양반 신분 취득
결과 양반 수 증가, 상민 수 감소양반 중심의 신분 체제 동요
※기출자료(조선 후기 신분제의 동요)※
 옷차림은 신분의 귀천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까닭인지 근래 이것이 문란해져 상민·천민들이 갓을 쓰고 도포를 입는 것을 마치 조정의 관리나 선비와 같이한다. 진실로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심지어 시전 상인들이나 군역을 지는 상민들까지도 서로 양반이라 부른다. -『일성록』-

 근래 사전의 풍속이 나날이 변하여 하찮은 아전이 길에서 양반을 만나도 절을 하지 않으려 한다. 아전의 아들·손자로서 아전의 역을 맡지 않은 자가 고을 안의 양반을 대할 때 맞먹듯이 너 나 하며, 자(字)를 부르고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  -『목민심서』-
  • 노비의 신분 상승
    (1) 노비의 감소 : 군공·납속을 통한 신분 상승, 도망 노비의 증가, 노비 종모 법의 실시
    (2) 공노비 해방
배경 상민 수의 감소로 국가 재정이 부족해지자 공노비를 해방하여 상민의 수를 늘리고자 함
내용 순조(1801) 때 중앙 관서의 노비 6만 6천여명 해방

2. 향촌 질서의 변화

  • 양반층의 신분 변화
    (1) 배경 : 농촌 사회의 분화, 신분제의 동요
    (2) 결과 : 양반 중심의 향촌 질서 변화
  • 부농층의 등장
    (1) 배경 : 부농층이 납속 등을 통해 신분 상승
    (2) 결과 : 정부의 부세 제도 운영에 참여, 수령과 결탁하여 향회 참여, 향임직 진출(신향)
  • 향전의 발생
내용 구향과 신향 간의 대립 발생
결과 구령과 향리의 권한 강화, 향회가 수령의 부세 자문기구로 전락
영향 세도 정치기에 수령과 향리의 수탈 증가

3. 가족 제도의 변화

  • 가족 제도 : 부계 중심의 가족 제도 강화
    (1) 친영 제도의 정착
    (2) 큰아들이 제사 전담
    (3) 재산 상속 시 큰아들 우대
    (4) 아들이 없는 경우 양자 입양 일반화
    (5) 부계 위주의 족보 편찬, 동성 마을 형성
  • 혼인 제도
    (1) 특징 : 일부일처가 기본, 첩을 들일 수 있음
    (2) 첩의 자식(서얼)에 대한 차별 : 문과 응시 불가, 제사나 상속 시 차별 대우

조선 후기의 사회 변화 요점 정리 끝.